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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스의 눈을 사로잡은 韓商 곽정환 코웰이홀딩스 회장
  글쓴이 : 바람돌이     날짜 : 14-02-24 00:01     조회 : 3593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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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잡스의 눈을 사로잡은 韓商 곽정환 코웰이홀딩스 회장
`무모한 도전`이 창업도 애플납품도 모두 만들어냈죠
편한 대기업 박차고 나와 무작정 홍콩行 봉제사업 시작
트렌드 먼저 읽고 IT기술 개발…잡스가 우릴 선택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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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부품 업계의 `히든 챔피언`으로 통하는 코웰이홀딩스의 곽정환 회장은 평소 만나기 힘든 인물로 꼽힌다. 코웰은 애플 아이폰에 쓰이는 카메라모듈을 생산ㆍ납품하는 매출 8000억원대의 중견기업이다. 하지만 평소 곽 회장의 조용한 행보와 해외활동이 많은 공간적 제한, 애플 특유의 비밀주의가 어우러져 베일 속 회사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코웰은 곽 회장의 도전과 집념이 이뤄낸 결과물이다. 1992년 한ㆍ중 수교가 이뤄지던 해에 무작정 홍콩으로 건너가 설립한 봉제인형 회사 코웰토이가 모태다. 이후 사업 성장을 기반으로 곧장 IT 업종으로 사업을 다각화해 카메라모듈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코웰이 유명세를 탄 것은 스티브 잡스 사후. 그동안 철저히 비밀에 부쳤던 협력사 명단이 공개되면서부터다. 아이폰 출범 당시 매출 500억원에 불과하던 중소기업이 잡스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후 성장세는 눈부셨다. 지난해 기준 코웰이홀딩스의 실적은 불과 10여 년 만에 8600억원을 넘었다.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어 외국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곽 회장은 스스로를 `한상(韓商)`이라 부른다. "성공한 한상으로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게 그의 목표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곽 회장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만났다.

-잘나가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에 나섰다.

▶고교 시절부터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학 졸업 후인 1987년 (주)대우에 입사해 관리부서에 배치받았다. 사업을 위해 경험을 쌓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신입사원이던 시절 간 크게도 3개월을 인사팀과 싸워 해외영업팀으로 다시 발령받았다. 처음 맡은 업무가 국내에서 봉제인형을 OEM 방식으로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는 일이었다. 그땐 `회사가 돈까지 주며 일을 가르쳐 주는구나`라는 고마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보니 윗사람들에게도 제법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국내 인건비가 상승곡선을 그리던 무렵, 회사에 공장 이전을 포함한 해외 진출을 제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럼 내가 해보자`고 생각하고 곧장 회사를 나왔다. 원래 사업을 할 운명이었나 보다.

-곧장 홍콩으로 건너가 회사를 차렸다. 인연이 있는 곳인가.

▶해외지사 근무 경험조차 없으니 홍콩과 인연이 있을 리 없다. 1992년 홍콩으로 건너갈 때는 간소한 짐과 아내, 두 살 배기 딸이 전부였다. 많은 창업가들이 인맥과 자금 없이 어떻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처음부터 번듯한 사무실과 공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맨몸과 전화기 한 대로 시작할 용기만 있으면 충분히 이국땅에서도 사업에 나설 수 있다. 회사 시절 경험을 살려 코웰토이를 설립한 뒤 봉제인형 유통에서 시작해 점차 회사를 키워 나갔다.

-봉제인형 하다 스마트폰 부품 제조로 방향을 틀었다. 계기가 있나.

▶봉제인형을 평생 사업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봉제인형은 내가 살아온 길에 의해 `주어진` 사업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신사업을 고민해 왔다. 성공한 기업을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기술이나 가격 면에서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탁월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 다른 하나는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남들보다 빨리 읽는 안목을 갖추고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인들은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후자다. 조만간 전자기기에 부착된 소형카메라 시대가 올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1년 카메라모듈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극적인 변신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밀어붙였다.

-품질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애플과 잡스의 눈높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점에 관심을 가진다. 이 역시 우리 회사가 트렌드를 먼저 읽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트렌드를 본다는 것은 누가 강자가 될지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과도 관계된다. 카메라모듈을 납품한 것은 2009년이지만 애플과의 사전협의는 2년 전인 2007년에 시작했다. 그 당시는 아직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이기도 전이었다. 당시 애플의 아이팟에 카메라모듈이 있으면 좋겠다란 아이디어를 들고 애플을 만났다. 우리 회사 내부에서도 매출 500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애플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겠느냐며 부정적인 기류가 팽배해 있었다. 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애플과 거래 전 한국 기업과 거래는 없었는지.

▶그 이전에는 삼성ㆍLG 등 한국 대기업들과만 거래를 하고 있었다. 한국 IT가 강하다고 하면서도 삼성ㆍLG를 따라잡는 중소ㆍ중견기업이 나오지 않는 것은 국내시장에서 이들 대기업의 납품처 역할에만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업의 매출처를 다변화하고 글로벌 무대로 회사를 올리기 위해선 애플과의 거래가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을 공략할 때 거래 이후 얻게 될 혜택과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선 발상을 바꿔야 한다. 먼저 대기업들에 무엇을 줄 수 있을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가격, 물류나 품질은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코웰은 몸집이 작은 기업이 갖는 경영의 `스피드`와 연구개발(R&D) 역량을 선보여 애플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한때 한국 증시에 상장하기도 했는데 3년 만에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증권 업계에선 기술유출 우려와 지배구조 단일화를 위한 조치라고들 관측했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코웰은 홍콩에 본적을 두고 있어 엄밀히는 외국 기업이다. 2008년 외국 기업으로서는 두 번째로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우리보다 앞서 상장한 회사가 완전한 외국 기업이었던 만큼 해외에서 회사를 키워 모국을 찾은 한상으로선 처음이었다. 하지만 증권시장의 분위기는 냉랭했다. 당시 정부와 한국거래소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 상장을 선택하는 외국 기업은 적었다. 그만큼 한국 증시에 상장한 외국 기업들 중에는 제대로 된 곳도 많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중국 기업으로 분류되는 코웰도 도매금으로 시장에서 평가절하됐다. 이 때문에 2011년 자본확충이 필요한 시점에 시장에서의 유상증자 대신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의 자본을 유치해 자진 상장폐지하는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코웰에는 한국인 직원이 130명가량 있고, 스스로도 한상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직원들에게도 한국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한국 중소기업의 롤모델이 되자는 사명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상장폐지 이후 코웰이홀딩스의 현황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코웰은 현재 지주회사인 코웰이홀딩스를 필두로 홍콩의 코웰옵틱일렉트로닉스와 중국의 동관코웰광학전자유한공사, 한국의 코웰전자 세 축이다. 여기에 더해 홍콩에서 투자회사인 코웰헤지펀드와 코웰에셋도 경영하고 있다. 특히 카메라모듈, DVD롬 같은 광학 컴포넌트(component) 등의 수요가 늘면서 중국 헝컹에 위치한 2만5000㎡ 규모의 공장에 이어 2012년에는 후난에 5만㎡에 달하는 2공장을 증설해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광학 컴포넌트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카메라모듈은 3위 정도다.

-향후 코웰이홀딩스를 어떤 회사로 키워나갈 생각인가.

▶일단 내년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시에 홍콩 증시에 재상장도 추진 중이다. 시장 트렌드를 보면 지금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하드웨어적인 경쟁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앞으로도 항상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것이다.

◆ "대한민국 청춘들이여,
주식처럼 인생도 주가가 있다…섣부른 포기로 하향곡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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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곽정환 회장이 선뜻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패기와 열정을 잃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작게나마 도전과 용기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혔다. 스스로가 롤모델이 돼 청년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해주고 싶다는 것. 이와 관련해 곽 회장은 오늘날의 코웰을 만든 비결에 대해 "무모한 도전과 용기 때문"이라고 몇 번씩 강조했다. 그는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나 무작정 이국땅에서 사업을 시작해 애플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돌이켜보면 도전정신이 없었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성공한 기업인의 행보는 시작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모두 무모한 도전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앞서갈 수 없다"며 "무모한 도전과 역발상만이 성공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찾을 때마다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청년들을 보면 그는 안타깝기만 하다. 곽 회장은 "아무리 세상이 험해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새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다"며 "삶의 의미조차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도 주식시장처럼 주가가 있다고 했다.
 
`인생 주가`가 나이 먹어서도 계속 상승곡선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곽 회장은 "명문대 출신이라면 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 주가가 최고점이고 이후 주가가 내리막을 걷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며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곽 회장은 기업가정신을 청년들에게 알리는 창업전도사로 `인생2막`을 꿈꾸고 있다. 그는 "노후에는 청년들에게 도전과 용기의 중요성을 알리는 멘토 역할을 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서라도 성공한 기업인으로 남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 곽정환 회장은…

△1964년 대구 출생 △계성고 졸업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7년 (주)대우 입사 △1992년 코웰토이(홍콩) 설립 △1997년 코웰전자(한국) 설립 △2002년 코웰옵틱일렉트로닉스(중국) 설립 △현 코웰이홀딩스 회장

[전정홍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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